이미 여러 블로그 통해 강추!!라는 글들을 너무 많이 보기도 한 터라 왠지 이건 봐 줘야 할 듯한 알지 못할 의무감에 보게 된 영화. 개봉 이튿날에 본 데다 종로도 아닌 대학로 극장(판타지아)이었는데도 바로 다음 타임 시간 표는 항상 매진되어 버리는 걸 보고 그 옆 썰렁한 태풍 쪽 보니 입소문이라는 건 정말 무섭다는 생각 다시 했다.
"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단다. 여러 상들도 받고 꽤 작품성 있는 연극이라는데 그 연극을 원작으로 해서 감독의 재해석을 거쳐 탄생하게 된 영화가 바로 왕의 남자. 물론 2005년 내내 제작하는 과정 홍보하고 했겠지만 1년을 외국인 노동자( .. )로 살다 11월 21일에 한국 들어온 GONS에게는 그저 생소하기만 한 영화. 역사적 기록에 남은 공길이라는 이름의 한 광대가 연산군의 폭정을 빗대어 한소리 했다가 처형당했다라는 한 줄의 사실로부터 작품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만 실제 연극과 영화는 조금의 시각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연극은 장생(영화에서는 감우성)보다는 공길(영화에서는 이준기)에게 더 포커스를 둔 반면 영화는 장생에게 더 무게를 실어 주었다. 또 연극은 공길이 벼슬과 지위의 변화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 군상을 그리려고 한 반면 영화에서의 공길은 장생과는 달리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상황에 따라 적응해가는 모습을 더 보여준다. (연극을 본 건 아니다-_-; 연극 내용이 그렇댄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는 아래에 살짝 가려 붙여 두고 .. 전체적인 감상 내리자면 일단 볼거리 와방 많다. 역사학자가 아닌 터라 영화 내내 스크린을 채우는 당시 화려했던 여러 궁중 모습들이 실제 사료들과도 일치하는 지 어떤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재현에 공들인 노력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다. 감독이 황산벌이라는 영화 감독한 사람이라는데 .. (황산벌 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박중훈표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보고 나니 그냥 그런 박중훈표 코미디 영화는 아닐 듯 싶기도 하다) 뭐랄까 상업 영화라는 상품에 대해 꽤나 잘 파악하고 있는 거 같다. 대중들의 니즈를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지, 이건 어느 정도로 건드리고 저건 어느 정도로 건드릴 것인지 따위의 기술도 조금 갖고 있는 거 같고.
그 화려하고 가득한 볼거리만으로도 투자한 시간은 이미 아깝지 않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까라는 부분 역시 굳이 말로 설명할 것 없이 스크린에 흠뻑 묻어나오고 있고. 다만 살짝 아쉬웠던 거는 어느 한 순간 팍 터져 나오는 감동이 조금 부족했다랄까. 흥미롭게 보고 영화도 참 좋았지만 나오는데 뭔지 모를 아쉬움같은 그런 부족한 2%. 그 2%에 별 한 개 깠다. 뭐라고 딱히 얘기는 못하겠지만 그 2%만 어떤 형태로든 채워졌었다면 (물론 지금도 충분히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정말 2005-2006시즌을 장식하는 화려한 자리 꿰차고도 남았을 텐데 아쉽다.
주연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역시 작품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감우성이 출연한 영화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본 거 같은데 (마지막으로 본 게 결혼은 미친짓이다였나 .. 그 .. 엄정화랑 나온 거) 이번 영화에서 장생 연기 정말 대박났다. 줄도 꽤 타더라. 그거 연습한다고 쉽게 타는 거 아니지 않나? ;; 광기는 어려 있으나 (혹자는 슬픈 광기라 표현했다) 어두운 기억에 힘들어 하는 연산군 역 정진영도 최고였고. 그 어두운 기억 속 연산군 치맛폭으로 감싸안아 자신의 위치 지키려 한 장녹수 역 강성연도.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영화로 최고의 새해 맞았을 공길 역의 이준기. 마이걸인가 뭔가 하는 드라마에도 나오고 있다는데 드라마 원체 안 보니 관심도 없고. 다만 왕의 남자에서 공길은 정말 이 녀석이 신인인가 싶을 정도로 탄탄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싸이 어디다 남겼다는 친일파 논란이 새해 벽두부터 포털메인 조금 장식하긴 했지만 사과도 하고 나름 무난히 넘어가는 거 같다. 연산군의 마음을 헤아리는 유일한 신하 처선 역의 장항선 아저씨도 처음에는 근엄한 사극톤 대사들 좀 안 어울린다 싶어 관객들 몇몇이 웃긴 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그 인물에 빠져들게 하는 관록(!)을 보여주셨고. 또 개인적으로 꽤나 좋아하는 배우 유해진을 비롯해(공공의 적에서 좋아졌다 ㅎㅎ 칼잡이 시범ㅎㅎ) 꽤 인상 깊었던 나머지 두 명(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명이 원작 연극에서 각각 장생과 처선 역을 맡아 열연했던 연극배우들이란다. 이번에 연극 앵콜 공연 결정난 거 같던데 이번 무대에서도 그 모습 보여준다네.
광대 .. 는 이전부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많아 어떤 존재였다던가 무슨 일을 했다던가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야 겨우 당시 시대상이라던가 당시 서민들의 풍자와 해학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 왕을 가지고 놀아보자-라는 장생의 한 마디에 시작된 절대 위험한(!) 마당 한 판은 꽤나 직설적인 성적(性的)농담을 걸쭉하게 섞어가며 신명나게 풀려 간다. 우여곡절 끝에 연산군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 날, 패 단원들 미친듯이 떨어버리는 연기 정말 리얼했고(하하), 무표정 포커페이스로 응시하는 연산군은 진짜 무섭더라.(정진영 아저씨 멋지삼) 하지만 막판 멋지게 펼쳐진 아랫입공길의 애드립으로 웃음보가 터진 연산군.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뒤로 히히해해 웃어대는 모습은 조금 자연스럽지 못하고 오버한다 .. 라는 느낌이 들더라. 조금 미친 모습 보이려 한 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 청연에서 택시 기사 장진영 웃음이 조금 어색하다라고 느꼈던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 이거 좀 설명하기가 어렵네. 쩝.
"아바마마, 어마마마가 보고 싶사옵니다" 연산군의 그림자 놀이는 영화 카피 그대로 모든 걸 다 가졌으나 외로운 왕의 모습을 가장 와닿게 전달해준 씬이었고 .. "그렇게 맹인 행세를 하다가 이제야 겨우 진짜 맹인이 되었는데 정작 맹인 행세는 못해보고 죽는구나" 한탄하는 장생, 그 대사를 인형 놀이에 가져와 눈물로 읊으며 손목을 긋는 공길. 연극과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는 변한 게 없는데 결국 녹을 먹으면서부터 변해간다고 오해 받는, 그리고 그 사실을 못내 힘겨워하는 영화 속 공길과 지위 상승에 따라 스스로 변해간다는(연극 본적은 없다고 이미 밝혔..) 연극 속 공길의 캐릭터는 그렇게 닮은 듯 조금 떨어져 존재한다. "시킨다고 다 하는 게 광대냐?" 스스로 목소리가 아닌 위에서 내려받아 공연을 펼치는 것이 싫어 희락원(연산군이 마련해 준 궁 내 광대들 거처)을 나가려는 장생은 연극 속 장생에 비해 그 비중도 훨씬 무겁게 변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끌려가며 절규하던 장녹수는 언문 비방문까지 위조해 가며 연산군을 "빼앗아간" 공길을 없애려 들지만 뜻밖에 장생이 스스로 썼다며 공길을 보호하고 나서고 ..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다시 장녹수 치맛속으로 파고드는 연산군을 받아주며 나지막히 "미친놈" 읊조리는 장녹수는 이미 연산군을 감싸안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갈등을 별다른 가치판단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배역들간의 비중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인물들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소개를 고르게 해 주고 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갈등을 꼽자면 연산을 중심으로 한 공길과 녹수의 갈등, 공길을 중심으로 한 연산과 장생의 갈등, 그리고 연산을 중심으로 한 장생과 처선의 갈등 정도일래나. 어디에서 본 글인데 나이대에 따라 영화를 보면서 몰입하는 인물이 다르단다. 다른 나이대는 기억이 안 나고 50-60대 관객층에서는 처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데. 극중에서는 결국 비극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고 말지만 중신들과 연산 사이에서 그나마 나름 연산의 시야를 열어주고 연산을 이해하려 했던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왕의 남자 감상 포스트에 항상 등장하는 그 맨 마지막 스틸컷 엔딩. 연산군 폐위를 위해 몰려오는 중신들과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놀이로 계속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두 광대는 같은 시간이지만 서로 다른 장소에 갇힌 채 그 뒤의 전개를 관객들에게 맡기게 되는 것. 어디선가 감독이 쓴 글을 봤는데 줄에서 튀어오른 그 순간 그대로 둘은 그 시간 속에서 박제가 된 거란다. 연산군이 폐위가 되든, 반정이 일어나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가장 광대답게 그 순간 속에 멈춘 거라는 얘기.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더 다양한 해석이 충분히 나올 수 있을게다.
다 좋은데 확 몰아치는 감동이 없다 .. 식의 감동 코드 얘기 꺼낸다는 거 자체가 어쩌면 뻔하다며 손가락질하는 그 "뻔한" 레퍼토리에 결국 스스로 물들어 버린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뭐 .. 그래도 자리 일어날 때 영화 좋긴 한데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깨끗이 털어버리기 힘들었던 내가 좀 독특한 겐가. 막판에 장생과 공길이 줄을 타고 중신들이 연산군을 폐위시키기 위해 궁으로 몰려오던 편집도 뭔가 조금 거친 듯한 느낌을 받았고. 깔끔하지가 않다 .. 라 생각을 하는데 그대로 스틸컷 엔딩 뜨면서 그 생각 지워 버렸지. -ㅁ-;
아니나 다를까 태풍은 손익분기 600만도 힘들어 겨우 450만 턱걸이 예상이 나오고 있는데 왕의 남자는 예매율 1위에 오히려 뒷심 무섭게 올라치고 있더라. 이번에 200만 넘었다든데 .. 하나 확실한 건 그만큼 관객들 눈이 높아졌다는 얘기겠지. 부실한 스토리 라인으로는 아무리 CG팀 밤새 노가다 퍼붓고 제작비 100억 200억 들이부어도 좋은 결과물 나올 수가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경태 아저씨 이번에 조금 깨달아 줬으면 싶다.
아래 청연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 다 개봉 이튿날 째 30일에 본 건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포스팅하는 이 게으름증은 ;; 나름 송년회에 신년회에 술 들이 붓느라 쓸 시간이 없었다고 애써 우겨본다.:P 1월에도 기대되는 영화 무진장 많던데 .. 할리우드나 투사부일체도 재미있을 거 같고 ㅎ 그러고 보니 아직 킹콩도 못 봤구나 oTL 그건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던데 oTL
+ 여담인데 왕의 남자 끝나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계단으로 돌아돌아 올라가는데 앞에 가던 어떤 남자 두 명 중 뒤에 가던 친구가 계속 앞에 가는 친구에게 말을 건다. 소재는 왕의남자 막판에 나온 "너는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될 테냐" "물론 광대지" 패러디였는데 계단 올라가던 사람들 다 처음 보는데 웃음 터져버리더라.:D
" OOO 이 녀석(이름을 불렀다)!! 너는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될 테냐?!"
그런데 사람이 많아 조금 창피했나 보다. 앞에 가던 친구 대답 없이 그냥 오르던 걸음만 빨리 하는데 재차 묻던 뒷친구 한 마디.
"너는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될 거냐구? .......................... 킹콩? 응? 슬픈 남자 킹콩?"
12월 30일 대학로 판타지움 4관 19:20이었나 19:10이었나 왕의 남자 보고 계단으로 올라가시던 두 분 덕에 즐거웠어요 :D ~ 근데 쓰고 보니 재미없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