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의 정의
어떤 작품을 미니픽션이라고 하는가.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해서 전세계적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새로운 문학 장르이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미니픽션을 한두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미니픽션을 하나의 문학 장르로 간주해야 할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서술 형식으로 봐야할지 결정해야하는 문제를 시작으로, 수많은 다양한 미니픽션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과 경향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모색단계라 정형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모든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작가와 비평가들은 전통적인 단편소설의 분량이 원고지로 환산한다면 대략 70매에서 150매 사이라는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단편소설보다 짧은 분량의 미니픽션은 원고지 70매 미만의 작품을 일컫는 용어로 이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니픽션’이라 함은 아주 짧은 단편과 초단편을 지칭한다. A4 용지 한 장 분량이 일반적인 길이지만 열려 있는 장르의 특성상 한 줄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며 폭이 아니라 깊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에 대한 통찰은 분량의 많고 적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짧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쉽게 육박해 들어갈 수 있다. 미니픽션 작가는 인생과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 삶의 급소를 발견해내고 찌를 수 있어야 한다.
장편소설이 극영화이고 단편소설이 단편영화라면, 미니픽션은 한 장의 사진에 비유될 수 있다. 사진의 강점은 선명성이다. 두 시간이 걸리는 영화 한 편도 포스터를 만들 때는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된다. 선명한 주제의식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인생을 다 담고도 남을 때가 있다. 영화는 ‘더하기’이지만 사진은 ‘빼기’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부각하지 위해 과감한 생략을 지향한다. 장편 혹은 단편소설과 대비되는 미니픽션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읽으면 하나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소설, 읽는 동안 마치 아름다운 음악 한 곡을 듣는 것처럼 여운이 깃들어 있고 전통적인 회화성을 잘 구현한 소설이 미니픽션이다.
미니픽션의 또 하나의 장점이자 생명은 다양한 해석 앞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것이 압축되어 있어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작품. 종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끝이 열린 이야기가 미니픽션에 어울린다. 시조에서 종장을 없앤 하이쿠 같은 작품. 산문의 하이쿠라고나 할까.
예리한 칼날로 베어낸 인생의 단면인 미니픽션은 짧아서 오히려 그만큼 사유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다. 미니픽션은 또한 판타지, 그 중에서도 형이상학적인 환상을 다루기에도 적합한 장르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성과 내면풍경과 일상에 뿌리를 내린 이야기는 물론 문학의 오지를 탐험하는 소설이 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하자면, 짧지만 역설적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글이 미니픽션이다.
미니픽션의 문학적 배경과 현황
처음에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장래가 불투명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다름 아닌 인터넷문화가 더욱 깊숙이 일상 속으로 파고듦에 따라 이 새로운 경향에 순발력 있게 적응할 수 있는 문학 장르로 미니픽션이 단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덕분에 이제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아예 일상이 되어버렸다. 화면상에서는 짧고 재치 있는 글일수록 잘 읽힌다. 주 텍스트와 댓글 달기 등 디지털 문화의 일반화로 쓰기와 읽기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전해야 할 정보가 압축되고 압축되어 한두 문장 안에 완결되기도 한다. 디지털 글쓰기는 ‘짧고 간결하게!’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니픽션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하나같이 미니픽션이 아직은 단편소설의 장르에 속하고 있지만 곧 독립된 장르가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소설(novel)과 중편소설(novelle)이 다르듯이 단편소설과 미니픽션도 매우 다르므로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를 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르가 뒤섞이는 현대문학에서 미니픽션이 하나의 장르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보다는 왜 미니픽션이 최근 들어 위세를 떨치고 있으며 앞으로 그 가능성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은 미니픽션이 사이버시대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고 말한다. 즉, 분량이 길어 커서를 내려가면서 읽는 소설과는 달리, 모니터에 모든 내용이 들어오면서 예술성 또한 기존의 장편소설 못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픽션은 사이버소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이버소설은 독자와 작가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독자가 작품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텍스트에 직접 관여하여 자신의 텍스트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게임처럼 독자가 원하는 대로 텍스트를 확산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이버소설은 아직 다원적 의미의 문학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미니픽션은 독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여 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독자와의 교감을 통한 창작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미니픽션이 21세기 문학의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면 그냥 잠시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맞느냐의 문제는 사이버소설의 장점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니픽션이 사이버소설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문학성 결핍에다 현실 도피적인 게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사이버소설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거다. 삘 제대로 받음. 손으로 뮤직비디오를 써라. 펜으로 영화를 그려라. 전하고 싶었던 어떤 느낌, 어느 한 순간의 장면을 전달하려고 관심도 없는 전후사정 다 늘어놓을 필요 없다. 굳이 구조니 뭐니 머리 아프게 마음에도 없는 말 지어내지 말고 A4 한장으로 모든 걸 전달해라. 독자로 하여금 이미 그 상황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너무 대단한 걸 알아 버린 듯한 이 반갑고 설레이는 알 수 없을 두근거림이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