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훈련소 입소하고 바로 다음날이었던 거 같다.
입고 왔던 사제복 모두 벗고 군복으로 갈아 입는 과정에서도
한 침상에 20명씩 한 내무반에 40명이 마주 보고 서 있는 상황에서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하더라.
속옷까지 군복으로 갈아 입히려고 하는 걸테니
그렇겠구나 이해했다.
빨리 벗으라고 다그치고 소리 질러대는 것도
뭐 이제 군대라는 곳 막 들어온 훈련병들이겠다
이른바 군기 잡으려고 그러는 거겠거니 이해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상태로
만들어둔 상태로 마주보고 차렷 자세로
세워 두고 그 사이 걸어다니면서 이런저런
시덥잖은 주의 사항이며 정신 교육하는 건 뭐냐 말이다.
옷 입혀 놓고 해도 되지 않아?
목욕탕도 아니고 생판 처음 보는 놈들이랑
스무명씩 마주보고 올누드로 정신교육 받던
그 참담한 심정이란 정말.
군대니까 이러는 거겠거니 생각해 버리긴 했지만
(어찌 생각하면 이게 더 문제긴 하다만)
어디선가 읽었던 포로 학대 관련 글도 기억이 났고.
옷을 다 벗겨 버리면 그 본능적인 수치심에
반발할 의욕도 잃어버린다고 했던가.
2. 겨울에 입대한 터라 1주일에 한 번씩은 온수목욕이라고 해서
대대 안에 있는 공동 목욕탕으로 샤워를 하러 갔다.
미리 말하자면 물론 당시 기간병들 상황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목욕시켜야 할 인원은 넘쳐나고 ..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
빨리빨리 시키고 빼야 다른 중대 인원들도 씻을테니.
속옷도 입지 않은채 위아래 활동복이라 해서
체육복 비슷한 옷 입고 비누며 칫솔이며 들어있는
세면백 하나 손에 들고 줄 맞춰 목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옷 벗고 탕에 들어가긴 하지만 멋대로 물을 틀어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쩌렁쩌렁 울려대는 넓은 공간 안에
울려퍼지는 조교의 목소리.
통제에 따라야 빨리 끝난다 어쩌구
개인 행동은 각오해라 저쩌구.
그리고 떨어지는 명령.
"물 틀어!"
그야말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온 몸에 물을 "묻힌다".
20초나 지났을까.
"물 꺼!"
"비누칠해!"
목숨걸고 비누칠해댄다.
샤워 타월이 다 뭐냐. 샤워 크림이 다 뭐냐.
언제 물 트라는 말이 떨어질 지 모르고
그 전엔 비누칠을 끝내야 하고.
"물 틀어!"
한손은 마저 못 끝낸 비누칠 마무리하며
다른 손으론 물 틀어 다른쪽 비눗기 헹구기 시작한다.
언제 물 끄라고 할 지 모르니.
비누거품 묻은 채로 나가기 싫으면 목숨 걸어야지.
역시나 20초-30초나 지났을까.
"물 꺼!"
뭐 어느 단체나 그렇지만
한 번 지시에 딱 말 들어먹기는 힘든거고.
보이지 않겠지 생각에 구석에서 누군가는
소리 안 내려고 딴에 노력하며
아직 몸에 남은 비눗기 씻어내려하지만
조교들 하루이틀 장사도 아니고 귀신처럼 잡아낸다.
"엎드려!"
100명이 조금 넘는 중대 인원들이
비누칠이 씻겨졌든 남아있든
알몸 그대로 목욕탕 바닥에 엎드린다.
그리고 또 욕설 절반 섞인 훈계 한 바탕.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태어나 처음으로 알몸 팔굽혀펴기도 해 보고.
한 번 온수목욕하면 으례 거치는
연례행사인지라 나중엔 별 생각 없어져서
엎드려 있는 와중에도
일어나라고 하는 말만 나오길 기다리는
그런 한 마리 개였다.
매번 그러는 거 뻔히 알면서도
가끔 미친듯한 속도로 마치고
1등으로 끝내고 나오면서,
대략 순위권으로 끝내고 나오면서
그거에 서로 웃고 뿌듯해하던
어처구니없던 바보 녀석들이나.
매번 욕 들어먹고 그런 꼴 당하더라도
그래도 뜨거운 물로 몸 한 번 씻어낸다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걸 얘기하며
훈련소 낭만이라고 웃으며 안주거리 삼는
똑같은 바보 녀석인 GONS나.
이미 여기저기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이 나라 군대 문화라는 게 참 뭘까라는 생각도 들고.
이러다 보니 마초니 구리구리 예비역이니
복학생 아저씨라는 소리나 듣지.
3. 군대니까,
어차피 사회와는 다른 특수한 단체이니까,
잠시 누구나 거치는 한 과정일 뿐이니까,
라는 식의 생각으로 잠시 무심했던 것도 사실.
어쩌면 어차피 이미 나는 끝난 마당에
돌아보니 추억이더라식의
무책임한 추억론이었을지도 모르고.
사내들 가득한 공간에서
그깟 욕설 좀 나오면 어떻고
몇 대 맞으면 좀 어떻냐 식의
다소 위험한 마초이즘에 어설피
빠져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문득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 동안 무의식중에 잊고 살아온게 아닌가 싶었다.
어떤 형태이든간에
폭력이라는 녀석은
익숙해짐이라는 가리개로
덮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절대 아님을.
이전에 태터 시절에
군대 욕설도 인권침해다라는 기사에 흥분해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익숙해져 버려
혼자 죽는 소리 하지 마라 다 겪는 거다라던가
그렇게 나약해 빠져서 뭘 할 생각이냐 따위의
폭력성이 필요악이라는 식의 군대 관련 글 쓰다
함장님에게 트랙백 한 방 직격(!)당하고
참 많은 생각했던 기억이 새삼 나는데.
생각도 좀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고칠 건 고치자.
적어도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수단으로
사람을 통제하려 든다는 건
가장 비열한 짓거리 아닌가.
다들 거치는 관문입네 돌아보면 추억입네 따위
배부른 소리 집어치우고 훈련병때 이등병때
처음 당했을 때 느꼈던 그 모멸감을 기억해라.
그건.
과거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던
고참들의 숨겨진 혜안을
뒤늦게 알아차렸다거나
그런 행동들 속에 담긴
기대 효과 따위가 아니라.
단지 이미 폭력에 익숙해져 버린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