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가 넘은 시각. 베란다에 나와 밖을 보는데 뭔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집집마다 문앞에 내어 놓은 박스들을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다니시며 모으고 계셨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서일까. 골목에는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은 박스들이 가지런히 내어져 있다. 개중에는 배가 담겨 있었을 법한 박스도 있고, 포도 상자도 있고, 양주가 담겨 있었을 종이가방도 있고. 유난히 길었던 1주일간의 추석 연휴는 눈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고, 그 뒤엔 사람들이 이런저런 선물로 주고받았을 박스들만 남았다.
얼핏 봐도 우리 할머니 연세 또래로 보이시는 저 할머니. 노환으로 이번에 협심증 수술받으신터라 많이 힘드셨을텐데도 오래간만에 모인 가족들 앞에서 항상 농담 던지시며 즐거우셨던 우리 할머니. 자식들이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드린 용돈들 이제 나름대로 머리들 컸다고 쭈뼛쭈뼛 겉돌기만 하는 손주 녀석들에게 도로 다 나눠 주시며 수술 받으신 분 같지 않게 건강하신 모습 보여주신 우리 할머니. 아마 비슷비슷하게 즐거운 명절들 보내고 지겨운 귀경길 이겨내고 돌아온 서울.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지긋한 일상 푸념하며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간에, 돌아온 사람들이 내어 놓은 명절의 흔적들을 힘들어 잘 옮겨지지도 않는 걸음으로 묵묵히, 할머니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그렇게 계속 모으셨다.
이렇게 사진 찍어 올리는게 되려 사정도 모르면서 어줍짢게 지레짐작으로 연세 드신 분을 희롱하는 모양새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긴 했다. 하지만 연유야 어찌 되었든 그냥, 그냥 저 할머니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빌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바램이 나 혼자를 통하는 것보단 더 많은 사람을 통할 때에 훨씬 쉽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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