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 기간?
학교 수업 과제 때문에 읽어야 할 원서소설 핑계로 일마치고 12시 조금 넘어 도착한 도서관. 일 마치고도 피곤한 몸 이끌고 바로 도서관으로 직행하는 이 기특함을 보라!! 스스로를 애써 추켜세워가며 힘겹게 오른 4층 열람실 문을 열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도서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 어라 싶은 마음에 처음 다가온 느낌은 저러했다. 그건 바로 지금이 무슨 시험 기간인가 - 싶은 의아함 내지는 이유 모를 위기감.
날이 갈 수록 점점 치열해져만 가는 취업전쟁은 언젠가부터 4학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는 눈치보여 학교 행사 하나 제대로 기웃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마냥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한 시기. 그냥 푸념이 아니라 정말 와장창 쌓여 있는 '해야 할 것들'에 치여 '정말 해야 할 것들', '준비해야 할 것들'에 치여 '정말 준비해야 할 것들'조차 놓치고 사는 하루하루. 나름 치열하게 산다고 뒹굴어 보지만 그렇게 시간에 쫓겨, 상황에 쫓겨 갈수록 쌓여만 가는 '해야 할 것들'은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뭐, 그 모두가 결국 스스로가 그간 너무 안일하게 살았다는 반증이 아니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꾸 사람들에게 조바심을 건네고, 뒹군 것에 비해 이룬 것이 없다며 주위 둘러보며 안절부절하게 만드는 건 단지 그 사람이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어서만은 아닐 테다. 스스로 생각해서 난 이 길이다 확신을 가지고 거기에 비추어 부족한 스스로를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라면야 그 얼마나 멋진 광경일텐가. 그저 불안함에 연봉이 얼마라더라 정년이 몇 세라더라 숫자 놀음, 이리저리 셈해보며 계산기만 두드리다 남들 다 올라타는 파도에 뒤따라 몸을 맡기는 풍경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혼자서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양, 선견지명이라도 품고 있는 양 이래 떠들어 보지만 스스로도 결국 어느 파도에 몸을 실을 건지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고 있는 처지라 썩 그럴 듯하게 와 닿지 못하는 건 누구를 탓해야 할까. 눈치를 보며 몸을 실었든, 수많은 파도 중에 스스로가 제대로 골라 몸을 실었든 간에 그렇게 자는 시간까지 쪼개고 줄여가며 달린다고 해서 나중에 멋지게 파도를 탈 수 있는 사람은 그 중에 또 몇이나 될까. 이제 막 그 파도에 뛰어들어 나름 열심히 손 휘젓고는 있지만 나는 또 그 중 어느 쪽으로 속해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야 결론도 나지 않는 재미없는 이야기, 백만년만에 찾은 새벽 도서관에 앉아 또 괜히 어줍짢은 감상에 젖어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원서를 꺼내어 든다. 그래, 당장 파도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면야 휩쓸릴게 아니라 일단 눈 앞의 그 파도에 몸을 실어야 하지 않겠나. 그 파도가 어디에서 온 것이든, 누가 보낸 것이든 일단 어느 정도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남들 다 오르는 파도 따르지 않고도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도 찾을 수 있는 걸테다. 결국 빙 돌아 제자리. 결국 자기도 올라탈 거면서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며 혼자 생각 있는 척 하는 건 어쩌면 축제기간이라고 쿵짝쿵짝 놀자고 불러대는데도 선뜻 나갈 수 없는 처지가 싫어 괜히 한 번 부려보는 심통일지도 모르겠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모두들 참 고생이 많습니다. 열심히 휘젓다 보면 파도 그 까짓 거 못 올라타겠습니까. 괜히 혼자 씨익 웃으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배에 올라탄 듯한 묘한 동질감을 느끼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에 펴 든 원서책으로 다시 시선을 떨군다. 오늘의 고생이 내일의 사치랍니다. 좀 지겹고 힘들어도 다들 기운들 내자구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화이팅입니다.
.. 이렇게 또 빙 돌려 스스로에게 편지를 쓴다.
애써 강한 척 지쳐 보이는 녀석 스스로 안아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