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곳은 정말 폐쇄적인 조직이다.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들이겠지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는 시킬지 몰라도 정작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무섭게 배타적으로 돌변하는 집단이다. 군대내 의문사..라는 얘기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이야기이고 21세기라는 지금도 분명 어디에선가는 의문사가 일어나고 있을테다. 사회에서와 달리 쉽게 그 진상이 밝혀지지 못하고 묻힐 수 있는 그 이유는 일단 수사가 경찰이 아닌 군헌병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예하 부대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 상급 지휘관들은 그저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할 뿐 그 진상을 파헤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무슨 근거로 그런 결론을 쉽게 내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2년 넘게 군생활 하면서 부대에서 탈영한 사람도 있었고 자살 시도한 사람도 있었고 전방 철책 안에서 실탄이 유실되어 사단 헌병대까지 떴던 적도 있었고.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내가 보아온 지휘관들은 모두 사건을 덮으려는데 급급했지 그 뒤의 진상을 밝히려고 드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일단 이제 막 중령 대령 달고 별을 다느냐 못 다느냐 하는 판국에 자기 아래에서 그런 일이 터져 버렸으니 누군들 달갑겠나. 자연히 상부에 보고 따위 하지 않고 유야무야 잘 해결해서 덮으려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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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 보자. 모 사병이 고참으로부터 구타를 당해서 죽었다고 하자.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이랬을 경우에 문제는 복잡해진다. 일단 가해자 뿐만 아니라 공범이라던가 방관자 같은 주변 관련 인물들까지 복잡하게 수사선상에 올라야 하고 평소에 부대 분위기라던가 기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관련 부대 직속 지휘관들은 그에 관련한 지휘 책임 뿐만 아니라 온갖 사회적 질타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군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된 부분이라 이게 만약 언론으로까지 흘러 들어가서 크게 메이저에서 터졌다 싶으면 육군본부에서까지 수습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럴 경우 그 지휘관의 군생활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단순히 끝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쪽에서 완전한 매장이 이루어질 지도 모르고. 그네들 말로 자신의 허물로 인해 상관에게 폐를 끼쳐 드린 것이 되는 셈이니.
하지만 만약 그 사병이 자살한 걸로 처리하게 되면 문제는 조금은 더 수월해진다. 자살의 원인 제공자 몇몇만 잡아내 처리하면 되는 데에다 해당 지휘관의 지휘 책임 정도만 묻는 정도에서 문제가 단락 지어질 수 있다. 여차 하면 해당 사병이 원래 적응력이 좀 떨어지고 극단적인 면이 있었다는 식으로 몰아가서 죽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수도 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거다. 그냥 별 얘기도 안 하고 잘못을 해서 주의를 좀 준 정도였는데 혼자 탈영을 해서 산을 배회하다 발을 헛디뎌 실족사 했다는 식으로. 말이야 만들면 된다. 죽은 사람 하나 죄인 만들고 산 사람들은 살아 남자는 식이다. 이게 군대다. 좋아졌다 내무실 분위기 살아났다 어쩌고 저쩌고 아무리 얘기하고 티비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군대라는 특수성, 그 집단의 무서운 폐쇄성 속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이라는 건 분명 존재한다. 군 입대하는 친구들에게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기고, 그저 사지 멀쩡하게 건강하게만 제대하는 걸 군생활 목표로 두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상병 때였던가. 날씨 좋은 어느 가을 날, 주둔지에서 중대별로 병기본 훈련 주간이라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교육 중이었다. 당시 전역을 한 달 남겨둔 선임분대장이 지뢰/BT 교육 시범을 보이는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모의 훈련탄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큰 폭발음을 내면서 터지기에 가까이 있다거나 손으로 쥐고 있으면 부상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불발이 났는데 이를 안전 조치에 따라 처리할 생각은 안 하고 중대장이 그 선임 분대장에게 그냥 가서 손으로 제거하라고 했다. 그거 불발 나면 터지지도 않는다며 그게 뭐 진짜 지뢰냐고 손으로 그냥 파 내고 다시 묻으라고 해서 선임 분대장 그대로 하다가 건드린 순간 터져서 손 전체에 꽤 심한 화상을 입었다. 지켜 보던 우리들은 모두 놀라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그 시킨 중대장이 소리지르면서 한다는 말이 "이 새끼야, 왜 바보처럼 그걸 건드려서 다치나!! 병장을 날로 먹은 거야!!". .. 사실 그 중대장도 전역 두 달 정도 남은 말년이었기 때문에..뭔가 얽히는 게 싫었을 테지. 당시 사고 후유증으로 왼손 피부가 오그라들어 손가락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게 된 채로 전역하게 된 그 고참은 중대장을 고소하네 마네했는데 그냥 조용히 전역했다.
또 있다. 그 때가 RCT라고 부르는 훈련을 하고 있었을 때인데. 차도에 육공트럭이 와서 서고, 거기에 소대원들이 모두 올라타려고 대기중이었고 당시 분대장이던 한 고참이 밤이라 어두우니 애들 잠깐 길가에 있으라고 하고 육공 뒤에서 경광봉 들고 문 걸쇠 풀고 내리려고 하고 있는데 뒤에서 달려오던 민간인 트럭이 세워져 있던 트럭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 받아 버렸다. 트럭 뒤에서 걸쇠 풀다가 두 차 사이에 받혀 버린 그 고참은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져 버렸고 강철로 만들어진 육공트럭 뒤가 움푹 휘어 들어가 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나 버린 일에 모두 놀라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소대장이라는 녀석은 "봤지? 봤지?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저 트럭이 와서 받은 거지? 이건 사고지 그지?" 이 난리를 피우고 있다. 애초에 귀찮다는 이유로 육공 뒤에 정지 표시도 세우지 않고 뒤에서 교통 통제하는 사람도 없이 밤인데도 그저 빨리 타고 가자는 식으로 하다가 사고가 났으면. 아니...일단 사고가 났으면 사태 수습 부터 해야 할 거 아닌가. 그저 자신의 책임 회피를 위해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하고 확인 받고 넘어가려는 그 모습을 어처구니 없게 보고 있는데 소대 투고 쓰리고들이 모조리 달려나가 상황 수습하고. 그 고참의 상태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일단 골반이 복합 골절된 상태였고 갈비가 나가면서 내부 장기도 찌른데에다 충돌 당시의 충격으로 이미 내장 파열도 심각한 상황. 당시에 출혈이 너무 심해 부대에서는 영정 사진까지 준비했었다. 의사로부터 포기 선언까지 나왔었고. 다행히 기적적으로 수술이 잘 되어 이제는 전역해서 학교도 다니는 것 같지만.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 사람도 전역 한 달 남겨두고 일어났던 사고.
철책에서도 근 1년을 근무했는데 거기에서도 그저 사람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일단 평소 주둔지에서처럼 공포탄 들고 근무 투입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탄 25발들이 세 탄창 휴대에 한 탄창은 삽탄, 실물 세열 수류탄 하나 휴대. 이런 판국인데다 정작 근무를 나가면 고참인 사수는 총 기대 놓고 쓰러져 자고 부사수 혼자 전방이 아닌 후방을 경계한다. 전방으로 간첩이 오는 것보다 후방으로 순찰자가 와서 사수 자는 게 걸렸을 경우 그 편이 훨씬 더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오기 때문이다. 오버해서 쓰는 거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다. 만약에 자고 있는 사수가 평소에 자기를 무지하게 괴롭힌다거나..내 스스로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절박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장전 손잡이 한 번 당겼다 놓고 쏴 버리면 사고 나는 거다. 실탄 네 탄창 처음 봤을 때에나 무겁고 무섭지 자꾸 보다 보면 공 주고 받든 수류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놀게 된다. 실제 사람 죽일 수 있는 총도 자꾸 보다 보면 그저 장난감 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간부와 함께 철책 순찰하다 철책 안에 쓰레기 주우라고 문 따줘서 들어갔는데 뒤에서 간부가 사격하여 죽이고는 월북 시도해서 사살했다고 보고해서 의문사로 묻혔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물론 과장된 이야기이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마음만 먹으면. 실제로 규정상에는 즉시 사살로 되어 있는데..쓰레기 줍는다고 자주 철책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까. 간부든 병이든 암묵적인 합의 아래.)
자대에 처음 갔을 때 신병들 정신 교육이라고 무슨 헌병대 교육관 같은 곳을 데려간 기억이 난다. 그 곳에서 영창에 갇힌 입창자들도 보고 이런 저런 홍보용 자료들도 보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 사고예방관이었는데 온갖 벽이 사고 사진들로 가득했다. 폭발물 사고, 총기 오발 사고, 무슨 사고, 무슨 사고. 스너프를 연상시킬 정도의 잔인한 핏빛 가득한 사진들에 얼굴을 찌푸리고 옆으로 돌아가니 이번엔 목을 매 자살한 사진들이 실제 크기 사진으로 벽에 일렬로 붙어 있다. 핏빛 사진들이 징그러웠다면 목 매 죽은 사람들의 사진은 그야말로 온 몸이 쭈뼛하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눈 뜨고 혀 길게 빼 물고 죽은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불쾌감을 넘어서 본능적인 소름이 온 몸에 돋아났다. (이런 쇼크 요법을 군 당국에선 바란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 보다 더 기억에 남았던 건 그 위에 쓰여 있는 문구 하나. "보라 이 바보같은 죽음들의 모습을".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있는 그 상황에서도 반감이 확 치밀고 올라왔다. 물론 자살이라는 방법이 극단적인 그것도 좋지 않은 해결방법인 건 자명한 일이지만. 그 뒤에 있었을 온갖 문제들은 일절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혼자 바보라서 못 견디고 죽었다 봐라 얼마나 꼴이 바보들 같으냐는 식의 그 뉘앙스란.
케인님 친구분의 사후 경직된 자세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린 자세였다고 한다. 케인님 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의문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절벽에서 자살했다는 사람이 자세가 어떻게 저리 될 수 있나. 유서가 없는 점도 그렇고. 부검에 들어가셨다곤 하지만 어차피 군병원을 통해 부검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미 결과는 합의된 상태에서 부검 시늉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군대 내의 일이라 어떻게 수사 요청도 할 수가 없고. 지극히 폐쇄적인 집단.
젊음의 무덤이니 잃어버린 2년이니 떠들지만 다친 곳 없이 사지 멀쩡하게 나왔다는 것 만으로 난 성공한 2년이라 자부한다. 그 곳에서 함께 살아 나온 내 2년 기억 함께한 고참들 동기들 후임들, 그래서 더욱 형제처럼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고.
케인님 포스트를 보고 확 치밀어 올라 아침부터 마구 주절거렸더니 무슨 말을 갈겨 쓴 건지도 모르겠고 그저 앉아 한 시간째 키보드만 두들기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