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의 그 날이 지나고..
우리 집은 그 때까지 살던
주택에서 새로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가게 되었다.
88년 1월의 추운 겨울.
하지만 괜시리 동생과
둘이 하루 종일
엘리베이터도 타고
또 처음 생긴 침대 위에서
하루 종일 뛰고 하다보면
추운 줄도 모르던 나날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이어지는 내용
88년 3월.
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을 했고..
동생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유치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도 이젠
"학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 전처럼 그렇게
동생에겐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챙겨 주려고
노력했고..
그런 나를 변함 없이
내 동생은
절대신뢰하며 따랐다.
그 당시
어머니는
아파트 상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셨고
그 미용실 옆에는
의상실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
그리고 내 또래의
아들이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역시 금방 친해져 서로 쉽게 어울리곤 했다.
나만 따라다니던 동생 역시
그 녀석과 친해져
셋이서 항상 놀러 다녔다.
당시 내 동생에겐
보물1호라고 할 만한 장난감이
하나 있었다.
사슴 모양에 바퀴가 달려 있었고
배 쪽에는 주판처럼 생긴,
숫자를 셀 수 있는 알들이
달린 그런 교육용 장난감이었다.
어느 날
놀러 가는데
동생이 항상 방에 잘 모셔 두던
그 장난감을 집어 든 채
나를 따라 나온다.
저걸 왜 들고 나오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냥 같이 나갔다.
아파트 놀이터..
그냥 둘이서
놀고 있자니 그 의상실 친구가 온다.
셋이서 한참을 노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싸움이 붙었다.
당시 그 녀석이 또래에선
덩치가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좀 맞았을 거다.
항상 형이라고
날 따라다니던 내 동생.
형이 맞는 걸 보더니
겁도 없이 그 조그만 아이가
녀석에게 덤벼들었다.
"너 왜 우리 형 때려!"
내가 맞는데
그 조그만 동생이
뭘 어떻게 해 볼 리가 없다.
"넌 뭐야!"
그 녀석이 달려드는 동생을
팔로 튕겨 냈고
동생은 놀이터에 처박히듯 쓰러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동생 옆에 사슴이 떨어졌다.
그걸 바라보던 녀석의 눈이
묘하게 웃는다 싶더니
그 녀석은 사슴을 집어 들더니
놀이터 밖에다 집어 던졌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멍하게 사슴을 쫓는
동생의 커다란 눈.
휘익.
퍽석.
플라스틱 사슴은
아스팔트와 부딪히는 순간
그렇게 힘없이
세상과,
아니,
동생과 작별을 고했다.
어린 마음에 그래도 그 때는
내가 형이고
동생을 지켜줘야
한다는 그런 느낌이
꽤 컸었다.
무심코 고개를 동생에게로
돌린 나.
그 어린 아이는
울 생각도 못 하고
멍하게 박살이 난
사슴을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런 동생을
의상실 녀석은 히죽거리며
보고 있었다.
자기 대신
베개를 받쳐 줄 정도로
동생이 아끼던
사슴.
자기 눈 앞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박살이 나 버린 사슴을
바라보던 동생은
서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울 때
그렇듯이..
얼굴은 잔뜩 찡그리고
우는데..
소리는 나지 않는..
숨조차 쉬지 않고
그저 그렇게
얼굴만 울고 있는..
그런 동생을 보는 순간
난 소리를 지르며
녀석에게 달려들었고
놀이터에서
놀던 내 또래의 녀석들과
놀래 울음을 그친
내 동생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녀석에게
당해야만 했다.
녀석은 손 탁탁 털며
가 버리고..
난 힘 없는 내 자신이 미워서,
사슴을 잃은 동생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한
내가 불쌍해서,
그렇게 울면서 집으로 향했고
동생은
옆에서 사슴 조각들을 감싸 안은 채
이유 모를 눈물을 펑펑 보이며
날 따라왔다.
...........
그 다음 날..
학교를 다녀 온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은 서서히
잊어가며 TV만화를 보고 있었다.
만화를 재밌게 보고 나서
난 학교에서 먹다 남은
빵이랑 우유를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잠시 유유를 좋아하는
동생이 스쳐갔지만
동생이 집에 올려면
멀었기에
그냥 혼자 다 먹었다.
그리곤 뒹굴거리고 있는데 동생이 들어왔다.
항상 그렇듯이 괜히 내 옆에 와서
같이 뒹군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방 해해 거리며
같이 뒹군다.
그렇게 둘이
또 한참 같이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생이 가방을 뒤적뒤적하더니 뭐를 꺼내 주며
먹으라고 한다.
뭔가 하고 봤더니
사탕 두 개랑
쿠키 몇 조각.
쿠키는 언제 개봉된 건지
습기를 다 먹어서
눅눅해져 있었고
사탕은 얼마나 오래된건지
포장지가 다 우글거렸다.
방금 빵이랑 우유를
먹은 후라
안 먹어..
라고 말했다.
동생은 계속 나에게
들이댔고
첨엔 장난으로 웃으면서
안 먹는다고 그러다가
동생이 계속 그러니까
그만 짜증이 나서
안 먹어!
하면서 팔로 동생을 밀쳤다.
동생이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고
아픔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눈물을 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눈에 겹쳐 오르는 영상은..
놀이터에서의 동생의 울던 모습.
순간 또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래도 내가 울려 놓고 다시 또 내가 달랜다는게
괜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그냥 모른 척 이불을 뒤집어 써 버렸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 보니 방 안이 캄캄하다.
그렇게 오래 잔 것 같진 않은데..
거실로 나가 보니 동생이 앞으로 엎드린 채
잠이 들어 있다.
어두워서 거실 불을 켜는 순간..
난 또 한 번 울컥하는 걸
느껴야 했다.
동생의 눈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히 말라붙어 있었고
손에는 어제의
그 사슴 조각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옆엔
쿠키 몇 조각..
그리고 사탕 두 개가
조심스럽게 놓여 있다.
사슴 조각들..
그러고 보니
어제 가지고 들어왔었구나.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곧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셨고
동생은 자기 침대로 옮겨졌다.
난 엄마가 사슴 조각들을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웬지 모를 의무감에
난 그 조각들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들고
동생 방으로 가서
동생 장난감 상자 안에
적당히 집어 넣었다.
그 때 거실을 치우시던
엄마가 하신 말씀.
"얘는 비싼 돈 주고
유치원에 급식 시켜 주면
왜 안 먹고 꼭 이렇게
집에 남겨 가지고 온다니??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구 해!
양도 별로 안 되는 걸
이것 조금 남겨 오니?"
눅눅해져 버린
쿠키 몇 조각.
우그려진 봉지의
사탕 두 개.
그건 다섯 살 내 동생이
유치원에서 남겨 온
선물이었다.
먹고 싶어 봉지는
뜯었는데 차마 먹지는
못하고 냄새만 맡았겠지.
그렇게 다른 애들 먹는거
멍하게 보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거 보면서
사탕은 또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 조그만 녀석이
고민하면서 얼마나
만지작댔으면
사탕 포장지가 다 우글거릴까.
..그 모든 건
그 전날
그렇게 못난 모습을
보인 형에 대한
동생의 감사 표시였던 거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계속 울컥거렸다.
항상 동생에게 미운 짓만 하는
내가 싫었다.
괜시리 미안해져
동생 자는 얼굴
보려고 옆에 다가간 순간
동생 얼굴에 선명한
눈물자국.
거실에 쓰러져 자고 있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엉덩 방아 찧은 후..
그렇게 혼자 얼마나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을까.
사슴 조각들을
얼마나 매만지다 잠이 들었을까.
내가 너무 싫었다.
1988..그렇게 형제는 자라난다.
EPILOGUE - 언젠가 일본 만화 "아기와 나"를 한참 즐겨 봤던 적이 있다.
거기에 보면 신이가 진이에게 간식을 남겨 와서
주는 장면이 나온다.
난 그 장면 보던 순간
내 동생 생각에
훨씬 더 찡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느꼈던 그대로,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을 했지만
완벽히 재생해 내기엔
내 글 솜씨가 너무 허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