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 티스토리 단축키를 활용하시면 이동이 더욱 편리합니다. < A=다음글 S=이전글 Q=로그인 >

WORKS/소설2005/10/03 01:47
 .. 어둡다.

뭐지 .. 여기가 어디야. 내 .. 방인가? 가만 .. 나 오늘 군대가야 되는데. 지금 몇 시지 .. 잠깐 졸았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몸이 가뿐하고 정신이 지나치게 뚜렷하다.

5시 15분.

아. 새벽이구나.
한 시간만 더 자자 ..

............

아니다..피로도 다 풀린 것 같은데 여기저기나 좀 돌아보자 ..

일어나 불을 켜고 컴퓨터를 켠다. 아직도 민둥 머리가 못내 이상하고 썰렁하다. 동아리 카페 .. 과 홈페이지 .. 난 오늘이 정말 크게 기억될 날인데 사람들은 그냥 그런 일상들 중의 하루일거다. 2002년 2월 14일을 난 절대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을 텐데 많은 사람들은 그 날 내가 뭘 했더라 하겠지.

잠깐 그냥 그렇게 있다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 우연히 보게 되서 하나하나 또 다 본다.

그렇게 날이 밝아오고 있다.


2002년 2월 14일 07:00 아침식사



아침을 먹는 밥상이 유난히 평소완 다르게 뭔가 억지스럽다. 모두들 애써 즐거운 모습을 보이려는 듯 이상하게 오버하는 분위기 .. 참. 정작 당사자는 그냥 있는데 왜들 그러십니까. 묘한 분위기 속에 아침을 먹고 .. 일찍 나갈 준비에 옷도 입고 챙길 거 다 챙기고 .. 방문을 나서려다 문득 등 뒤로 내 방을 한 번 보고 눈 속에 담아둔다.

2년..금방 갈 거야. 금방.

광주 출발해서 논산까지는 2시간이면 족하겠지만 그래도 점심 좀 여유 있게 먹으려면 일찍 출발해야 된다 .. 는 생각에모든 걸 일정을 미리 잡고 움직였더니 좀 여유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차 안엔 이상하게 조용한 적막감 같은 것이 흐르고그것을 깨는 건 계속 울려대는 내 핸드폰과 통화하는 내 목소리 뿐이다.


2002년 2월 14일 10:40 논산 도착
.


거 참 ..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냐. 분위기 부터가 이상하네. 집합하는 장소가 어딘지 .. 는 봤고 ..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간다. 그런데 오늘 입대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일까. 민둥 머리가 하나 둘이 아니다. 각자들 모두 가족들 친구들 애인들 아는 사람이 다 왔는지 시끌시끌하다.

어딘가 고기집 잡고 고기 굽고 있을 쯤 되니 이제 전화가 덜 울린다. 그래도 들어가면 마지막이란 생각에 여기 저기 저장된 번호에는 차례대로 전화를 다 돌리고 있다.

- 예 .. 저 GONS인데요 .. 네 .. 하하 .. 지금 논산이요. 예 .. 이따가 1시에 들어가야죠 .. 지금 가족들하고 점심 먹으려구요. 하하 .. 네 ..

고기를 가져 오는 주인이 의외로 잘 버티시는 어머니한테 한 말씀 한다.

- 오늘의 주인공이 많이 드셔야죠 .. ?
- 내가 왜 주인공이에요 저 녀석이 주인공이지 ..
- 에..그럼 아주머니 왜 눈이 빨개진대요 .. ?
- 아저씨 ~ 안 그래도 눈물 참는데 자꾸 왜 그래요~
- 하하하하 .. 다들 그렇게 갔다 옵니다 .. 걱정 마시고 ..

뭔가. 식당 주인과 어머니와의 실없는 농담을 뒤로 하고 논산까지 따라온 가족들인데 식사 내내 이렇다 할 대화도 없이 그저 여기저기 전화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렇게 집합 장소로 갔다. 좀 죄송스런 맘도 있었지만 입대 .. 라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못한 전화 여기 저기 끝까지 마저 다 하면서 걷는다.

정문 주위엔 이상한 노점상들이 가득이다. 뭔가 하고 보니 싸구려 전자 시계, 바느질 세트, 명찰 세트 ,.. 그냥 군대 다녀오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별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사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 뭐 .. 필요한 게 있으면 사 오라 그랬겠지 .. 설마 입대하는 사람한테 뭐 사오라 그랬을까. 정문에서 바로 헤어지는 건 줄 알았더니 행사장까지는 같이 가서 거기에서 헤어지는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정말 많다. 그래도 아직은 2월이라고 날씨는 좀 쌀쌀한데 나름대로들 길던 머리를 밀어 버리니 시려워 다들 가지각색의 모자들이다. 큰 운동장이 하나 있고. 주변에 스탠드가 쭉 돌려져 있고 .. 고등학교 운동장이 생각나는 구조다.

논산이라 .. 팔도에서 다 올라왔겠거니 각지 사투리가 다 들리겠거니 했는데 웬걸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의 다 전라도 말투 아니면 서울 말투다. 아주 가끔 경상도 말투가 들리긴 한데 그건 진짜 일부분. 우연인가 .. 하는데 옆에서 사람들이 오늘은 전라도 쪽 지원자와 수도권 쪽 지원자가 입대하는 날이라고 떠드네. 지역에 따라 입대하는 날도 다른가 보구나. 행사장 건물 안에 있는 시덥잖은 국군 홍보 자료들도 보고 돌아다니는데 문득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 있다. 누구더라 ..

- 야! GONS!!

헛 .. 가해다. 이름이 특이해서 고등학교 때 유명했던 녀석. 반가워 인사하러 가는데 옆에 해성이도 있다.

- 울라 .. 뭐냐?? 니네 둘이 논산에서 다 보고 .. 누구 입대하냐?
- 어 .. 나 입대해. 오늘 .. 해성이도 오늘 같이 입대한다.

하하하하하 ... 드라마나 영화에 이런 얘기 나오면 분명히 욕 나올건데. 억지로 짜맞춘 우연의 연속이네 떠들면서.

- .. 근데 GONS 너는 여기 뭔 일이냐.
- 사실 나도 입대해 오늘 .. 하하하
- 진짜냐? 이거 무슨 .. 하하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뻘쭘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녀석들이 있어서 같이 다닐 수는 있겠네 ..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 일행을 보니 친구들만 가득하고 가족들은 함께 안 왔길래 그냥 이따 들어가서 만나기로 하고 잠깐 헤어졌다.

그냥저냥 행사장 좀 돌아보고 ..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좀 쉬다가 시간이 되어 행사장 쪽을 가리키는 안내를 따라 운동장으로 가는데 목이 뻐근하다. 잠을 잘못 잤나. 괜히 이리저리 목 돌리다 문득 올려다보니 새파란 하늘이 눈에 밟힌다. 참 ..하늘은 욕 나오게도 맑네. 안에서도 이렇게 하늘을 볼 수 있을래나.

여유 있게 간다고 간 건데도 벌써 스탠드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기저기 민둥머리 한 명을 중심으로여러 명이 뭉쳐 있다. 운동장엔 군복 입은 군인들이 몇몇 팻말 같은 걸 들고 서 있다. 그리고 연단에선 누군가 뭐를 하려고 마이크를 만지고 준비하고 그러고 있다.

.. 그런데 아직도 이 모든 게 꿈만 같다.

내가 오늘 군대가는 거 맞긴 맞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되나? 이제 모두들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지 시끌시끌하던 분위기가 점점 잦아드는 분위기다. 저 준비가 다 끝나는대로 이제 인사 드리고 가야 되겠지? 준비 천천히 해라 .. 빨리 안 해도 되니까 .. 아예 그냥 내일까지 해라.

혼자 싱거운 생각 좀 하다 문득 돌아보니 울어무이 눈 이미 빨갛다.

- 어유 ..그래도 울 어무이 오늘 잘 참으시네 ..
- 시끄러!!

그래도 그렇지 군대 가는 아들 등을 때릴 건 또 뭐랍니까 .. 되게 아프네. 실없는 농담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
그 순간.


- 입대하는 전 장정 운동장 앞으로!!!


듣는 순간 아 군인이구나 싶은 목소리가 딱 군인 말투로 소리지른다.

순간 조용하던 분위기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동시에 왁 .. 하며 마지막 인사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가만히 서서 행사 준비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동시에 서로 껴안고 난리가 났다. 이건 무슨 전쟁터에서 이별하는 분위기다.

정말로 .. 꿈만 같다.

- 그래 .. 몸 건강하고 .. 다 할 수 있는 거니까 잘 다녀오고 ..

우리 아버지는 역시나 덤덤하시다. 하하.

- 잘 갔다 오소 .. 어쩌면 형 제대하기 전에 나도 가것구만 ..

학교나 잘 다녀라 .. 참 못해준 것만 기억나네. 동생놈 ..

- 우리 아들 한 번 안아보자~

내 잘 참으시는 것 같더니 결국 한계에 도달하신 강한 척 울 어무이.

- 아들 잘 하고 올게요..걱정하지 마시고..전화 할 수 있게 되는 대로 전화나 편지도 자주 드릴게요..(동생에게) 잘 챙겨드리고 .. 잘 지내고 임마.

애써 의젓한 척 얘기는 해보지만. 눈물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 뭔가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다. 꽉 막힌 .. 뭔가 응어리라도 진 듯한 .. 아닌가. 뭔가가 꽉 들어찬 .. 서러운 것 같기도 하고 .. 자꾸 숨을 몰아쉬면서 진정을 해 보려 하지만 뭔가 꽉 막힌 듯한 억억한 가슴은 쉬 돌아오지 않는다.

마지막 인사로 혼자 스탠드를 내려와 다른 사람들처럼 운동장 한 가운데에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군인들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마음은 정말 ..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울 어무이 끝내 우시는 거 볼까봐 뒤 한번 안 돌아보고 그냥 팻말 앞까지 걸어간다. 매정하다 .. 생각해도 할 수 없다.

그거 보면 나마저도 무너져 버릴 것 같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멀쩡한 척 잘 하고 멋진 모습 보여줬는데 마지막에 무너지면 쪽팔리니까.

뭔가 남겨진 가족들 떠나 걸어가는 아들들에게 뭐라뭐라 제각각의 마지막 인사며 당부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뭔가 귓가를 웅웅거리는 것만 겨우 느껴질 뿐. 눈 앞에 팻말 들고 서 있는 무표정한 군인들만 점점 더 가까워질 뿐.

아직도 ..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자고 일어나면 한 순간 꿈일 ..

그런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G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