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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소설2005/10/17 00:48
이리저리 교육도 받고 어떻게 겨우 군복처럼 입긴 했지만 아직도 걸을 때마다 앉을 때마다 버석거리는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 무슨 상 당했을 때나 입는 그런 삼베옷 같기도 하고. 종이를 입고 있는 듯도 하고.

전투화 끈도 마음대로 묶는게 아니고 다 묶는 법이 있단다. 별의별 필요도 없을 듯한 그런 잡다한 상식들을 교육받다 보니 어느 덧 시간이 저녁 시간이 되어 식사 집합을 하라고 했다. 군대에서 먹는 첫 식사. 그 맛이나 분위기를 상상하기 이전에 군대에서 먹을 마지막 식사의 기분은 어떠할지, 그 때쯤의 내 모습은 어떠할지가 먼저 궁금했다.

식당으로 이동할 때에도 발 맞추어 줄 맞추어 이동을 한다. 뭐 .. 이 정도야 군대니까 뭐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그래도 겨울이라 추우니까 귀를 덮을 수 있는 귀마개 같은 걸 줬는데 조교들은 그걸 귀도리라고 불렀다. 목도리처럼 귀도리 ..뭐 그런 거 같다. 그런데 그게 누구라도 한 번 쓰면 완전 정말 60년대 아이가 된다. 콧물만 살짝 흘려주면 완벽한 시대 재연. 까만 털로 동그랗게 촘촘히 덮여 있는 귀도리. 오래 쓰다 벗으면 그 고무밴드가 머리를 누른 자국이 남아 완전 바보다. 한 내무실을 쓰는 사람 모두가 바보다.

겨울이라 그런지 장갑도 받았는데 두 개를 받았다. 하나는 그나마 가죽장갑처럼 생겨서 많이 본 형태인데 다른 하나는 완전 노가다 장갑처럼 생긴데에다 색깔 마저 완전 국방색이다. 크기도 크고 엉성해서 바람도 다 새어 들어오고 별로 따뜻하지도 않은데 이것만 끼란다. 가죽 장갑 담아 놓은 비닐이라도 벗겼다가 걸리는 놈은 가만 안 둔다는 엄포와 함께. 아니 그럼 겨울에 장갑을 안 끼우면 지금이 2월 중순인데 봄되고 날씨 풀리면 끼게 하려는 거냐?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한 두개가 아니다.

또 숟가락이라고 하기엔 국자 같고 국자라고 하기엔 앞에 포크가 살짝 붙어 있으면서 손잡이까지 너무 짧아 뭔가 이상하게 생긴걸 하나씩 준다. 그리고 군복 바지 옆에 달려 있는 건빵 주머니에 넣고 앞으로 여기 머무르는 3일 동안은 항상 휴대하고 다니란다. 어쨌든 그거 챙겨 넣고 줄 서서 기다리다 보니 어느 덧 내 차례가 되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군대에의 식당 .. 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조교들 말을 들어보면 식당이 아니라 취사장이라고 부르는 거 같았고 양옆으로 테이블들이 역시나 줄맞춰 여러개 놓여 있고 가운데에 밥이며 국이며 반찬들이 부페처럼 놓여 있고 그 앞에 각각 똑같은 훈련병인거 같은 녀석들이 반찬 하나씩 맡아 차례대로 배식을 해 주고 있다. 그리고 뭐가 그리 불만인지 하루 종일 욕만 해대는 조교들이 식당, 아니 취사장 곳곳에 배치되어 애들에게 소리 질러대고 있다. 너무 급격한 환경의 변화 탓일까. 오후의 지나친 스트레스 탓일까. 밖에서였다면 먹지도 않았을 이상하게 떡처럼 뭉쳐 있는 밥과. 젓가락질 두세번이면 끝나 버릴 턱없이 부족한 반찬이었지만 그저 냄새만 맡는 것 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지는 내가 어색했다.

배식을 받아와 앉는것도 아무데나 마음 맞는 애들끼리 앉아서 먹는게 아닌가보다. 자리를 지정해주는 훈련병 녀석이 따로 또 있었고 우리는 줄 선 그 차례 그대로 그 지도에 따라 가서 앉았다.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은 6명. 테이블 한가운데엔 어울리지 않는 조그마한 조화 바구니에 식료품통들이 담겨 있고, 이상한 문구가 적힌 명패가 붙어있다. 뭐야 ..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 우리보다 조금 먼저 입소한 듯한 훈련병 한 명이 소리친다.

- 감사의 기도!

나머지 5명은 앉아 있고 가운데 한 명이 일어나 선창하자 곧 모두가 뒤따른다.

- 감사의 기도! 이 식사는 우리 부모님의 피땀어린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므로 감사히 먹겠습니다!

뭐 .. 뭐냐 ;; 여기가 무슨 유치원이냐 .. ;; 아예 노래를 부르지 .. 피식 웃으며 숟가락을 뜨려는데 갑자기 누가 테이블 옆을 발로 걷어찬다. 그 와중에 넘친 국이 테이블로 쏟아지는 순간.

- 누가 기도도 안 하고 밥 처먹으래!?!

아. 저거 모두 다 해야 되는 건가보네.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 주고 교육이라도 시키던가 .. 아무 말 없이 이제 와서 안 한다고 사람 밥 먹는데 테이블을 발로 차냐 .. 나이도 별 차이 안 나 보이는 조교 새끼야. 눈치로 서로에게 미루던 마주앉은 가운데 녀석 둘 중 결국 하나가 쭈뼛쭈뼛 일어나 바구니 명패를 보며 아까 옆 테이블 하던 대로 흉내를 낸다.

- 감사의 기도!
- 가..감사의 기도! 이 식사는 우리 부모님의 피땀어린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므로 감사히 먹겠습니다!

더듬더듬 겨우 기도를 마치고 나니 조교가 이제 막 앉는 또 다른 테이블로 가서 노려 보고 서 있다. 후 .. 밥 먹을 때만이라도 좀 편하게 해 주면 안 되나. 웃고 떠들면서 식사하는 그런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이건 그저 방전된 로봇들에게 충전을 시키는 시간일 뿐이었다.

식사.

말 그대로 음식물을 입에 넣는 것 외에는 일절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음식은 .. 뭐 생각했던 것보단 그냥저냥 먹을 만 했지만 양들이 너무 작았다. 식사 내내 사회에서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학교 생활, 친구들, 사람들, 가족들 .. 그러다 점심 때 가족들과 대화는 커녕 여기저기 군대 간다고 전화하면서 그냥그냥 식사하던 생각이 문득 났다. 그래도 아들 녀석 군대 간다고 논산 까지 따라왔는데. 이런저런 당부하고 싶은 얘기도 많으셨을 텐데. 난 식사 시작부터 끝까지 전화만 하면서 혼자 밥만 먹었구나. 이거랑 .. 다를게 뭐였을까. 스무살 넘게 나이 먹었다는 놈이 왜 그런 간단한 것도 헤아리지 못하냐. 군대 오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것도 식사를 먼저 마쳤다고 혼자 일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6명이 모두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일어나야 한단다. 이미 아까 옆 테이블에서 혼자 다 먹었다고 일어나서 나가다가 조교에게 잡혀서 멱살 잡힌 꼴을 우린 모두 함께 잘 보았다. 마지막 녀석의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기다린 우리들은 함께 일어나 식기를 들고 줄지어 출구 쪽을 향했다. 짬통 .. 이라고 부르는 듯한 음식 쓰레기 버리는 통에 잔반을 버리는 듯하다. 사람은 많은데 통이 하나이다 보니 자연스레 줄이 생기는데 갑자기 또 그 앞에 서 있던 조교의 호통이 터져 나온다.

- 이 미친 놈이 지금 식기를 터냐? 야이 엿같은 새끼가 지금 식기를 털었냐?

식기를 .. 털어? 식기로 잔반통 안 벽을 치면서 남은 음식을 털어낸 녀석이 당하는 걸 본 뒤 우리들은 얌전하게 숟가락으로 잔반을 덜어내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나 역시 조용히 숟가락으로 잔반을 덜고 옆으로 가는데 이번엔 미친 듯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보아하니 모두 훈련병 같은데 마치 무슨 공장의 기계들 같다.

그곳에 식기를 넘기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대여섯명이 두 줄로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조교 녀석 하나가 지겹다는 듯 팔짱 끼고 서서 연신 양발로 번갈아가며 자기 발을 서로 차댄다. 가서 줄을 서있다가 10명째 녀석이 합류하는 순간 앞으로 갓~조교 녀석의 귀찮은 말투와 함께 우리는 내무실 건물로 다시 돌아갔다. 별도의 지시 있을 때까지 내무실에서 대기하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다시 내무실에 남겨졌다.

겨우 식사 하나 하고 왔을 뿐인데 뭔가 벌써 엄청난 경험이라도 하나 하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 삼일 동안 우리가 이 곳에서 하게 될 일은 무엇인지. 당장 내일 무슨 일정대로 우리가 움직이게 되는 건지. 당장 한 시간 뒤에 무엇을 할 지.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다음 통보만을 기다릴 뿐 우리가 먼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 바보 만들기 참 쉽다..라고 느꼈다. 벌써 같은 내무실 들어 온 가해 녀석 말고도 앞 번호 뒤 번호 녀석들과 조금씩 말도 붙이고 조금 친해진 거 같다. 우리끼리 있을 땐 그렇게 조교들 욕하면서도 막상 조교 앞에서는 숨도 못 쉬고 얼어서 시키는 대로 뒹구는 서로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 2년만 꾹 참자 우리.
2004년은 반드시 온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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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