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온 다음. 별도의 통보 있을 때까지 내무실에 앉아 대기하라는 조교의 말에 우리는 자기 자리에 앉아 눈치 봐 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앞 번호의, 바로 뒷 번호의. 행동은 하루 종일 같이 했지만 아직 서먹하여 말은 제대로 붙이지 못한 그런 녀석들과 가까워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암묵적인 서로의 필요 충분 조건이 이미 맞아 떨어져 서로에게 대화 생대가,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사람을 하나쯤은 모두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한 시간쯤이나 있었을까.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일제히 청소를 시작한다. 처음에 대충 번호 순서대로 끊어서 내려 준 각자가 맡은 구역을 열심히 청소한다. 밖에서는 나름대로 모두들 성질도 있고 남에게 굽히지 않으면서 살아온 녀석들이지만 옆으로 조교 지나갈 때면 더욱 팔이 떨어져라 걸레질을 해 댄다. 군대라는 곳은..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구나 싶어 씁쓸했지만 정작 나부터 조교 녀석들과 눈 마주치면 움찔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다 못해 백일 휴가 나온 친구 녀석을 그렇게 내가 놀려댔던 작대기 하나 이등병도 지금은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다. 말도 붙이기 힘들 정도로.
그렇게 청소가 끝나자 이젠 점호라는 걸 한단다. 군대 오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서 들은 터라 대충 인원 파악 같은 뭐 그런 거라고는 짐작하겠는데 실제로 세세하게 들은 적이 없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낮에 입었던 군복은 차곡차곡 개어 관물대 위에 접어 올리고, 그 접힌 끝선하며 놓인 접촉면의 선, 모든게 직각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인원 파악이 끝나니 이런 저런 공지 사항을 전달해 준다. 지급받은 흰색도 아니고 누런색도 아닌 애매모호한 갱지 같은 색깔의 내복을 모두 입고 스타일리쉬한 삭발도 아니고 3미리 까까머리를 한 채 차렷 자세로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니 정말 바보들도 이런 바보들이 없다. 밖에 사람들은 이런 광경 보면 뭐라고 할까. 이러는 거 알기는 할까.
근무 순서가 나왔는데 번호 순서대로 해서 내가 초번 근무로 바로 투입되게 되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서게 되는데 내무실 안에 의자 놓고 앉아 있는 한 명, 복도 쪽에 의자 놓고 앉는 한 명. 그렇게 한 내무실 당 두 명씩이 한 시간씩의 근무를 서게 되는 시스템인 듯 하다. 친구 녀석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내가 복도로 앉게 되었다. 이런. 여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겨울인데. 겨울의 복도는 정말 춥다. 물론 한 시간 뒤에는 나도 근무를 교대하고 들어가서 자게 되겠지만, 그리고 돌아가면서 중간에 일어나 근무 서고 자는 식으로 끊기는 잠을 자게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 바로 잠에 드는 녀석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오후 10시. 어디에선가 멀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곧 소등이 이루어지고, 불침번들 자기 위치에 모두 위치한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사람은 불침번이 같이 화장실까지 따라가 들여 보내주고 기다렸다가 같이 돌아와 자는 거 확인까지 해야 한단다. 훈련소에서의 자살을 막기 위한 조처라는데..어차피 이 곳까지 온 마당에 그럴 녀석이 있을래나. 다행히 나야 화장실 다녀올 것 다 다녀오고, 그렇게 잠이 든 시간대의 근무라 그런 귀찮은 일은 없겠지만서도. 10분 정도 지났을까. 잠이 정말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조용해진 건물. 조교 녀석이 자기 들으려고 틀어 놓은 고물 라디오 소리만이 작게 희미하게 귀를 간지럽힌다. 애써 귀 쫑긋 세워 들어보려고 하지만 워낙 작아 말 소리구나, 음악 소리구나, 웃음 소리구나 정도의 구별밖에 불가능하다. 슬쩍 눈치껏 몰래 보니 뭔가 막 쓰면서 공부하고 있다. 얼핏 보이는 책 표지엔 토익 어쩌구 막 쓰여 있다. 계급은 상병.
내가 상병을 달려면..2003년 2월..앞으로 1년...가만..훈련소가 6주이니까..한 4월말이나 되면 자대에 가겠네..경기도로 갈래나? 강원도? 휴..그리고 백일 휴가는..한 6월쯤 되면 나갈 수 있겠다. 으..그 때 월드컵인데..재미있든없든 그래도 이제 또 언제 한국에서 할 지 모르는데..그 때 시합 시간이랑 꼭 맞아서 나가서 구경해야지. 에 또...오늘이 2월 14일..이등병이 여섯 달이니까..8월에 일병 달겠다. 그리고..내년 2월에는 상병 달고..여덟 달 뒤에는 병장...2003년 10월..그리고..2년 2개월이니까..2004년 4월 13일에는 제대를 하겠구나. 2004년. 2004년.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너무 까마득한 시간이 남았다. 내 군생활의 끝은 보이지도 않고 옆에서 라디오 노래 따라 흥얼 거리며 책 보는 둥 마는 둥 앉아 있는 상병 조교 녀석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힐끗 옆을 보니 내무실에 앉아 있는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 있다. 그래도 조교의 시야 범위에서 사각 지대이니 걸릴 위험도 없다. 난 이게 뭐냐고..바로 옆에 앉아서..가위바위보 연습이나 해야겠다 내일부터는. 그래도 군대 들어와서 처음 맡는 내 임무라서 그런지 알 수 없는 책임감도 마구 샘솟는다. 복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계속 눈 부릅 뜨고 두리번 거리게 되는. 2002년..2년 2개월 뒤는 바라지도 않으니 2003년이라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2003년이 되면 내년에 전역한다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 내년도 아니고 내후년 전역이라니..이건 너무 끝이 안 보이잖아..새삼 1학년 때 짜증난다고 피하고 도망 다녔던 예비역 복학생 형들이 우러러 보이는 순간.
동생 녀석..부모님 잘 챙겨 드리고 있는 지 모르겠군. 녀석도 이제 대학생이니..02학번인데. 뭐 이런 저런 얘기도 해 주고 싶다만은..워낙 믿음직한 녀석이니 잘 하리라 걱정도 사실 별로 안 된다. 에..가만 있자..내가 제대를 2004년에 하니까..학교로 돌아가면 04학번들이 1학년이겠구나. 04학번이면..8..85년생?! 빨리 들어간 애는 86년생도 있겠군...;; 몇 살 차이야...네 살 다섯 살 차이..;; 말이라도 걸 수 있을래나 모르겠군..;; 내가 복학생 형들 피해서 도망다니고 웃고 그랬던 것과 똑같이 날 보고 그렇게 대하지 않을까? 웬지 군생활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도 모르는 얼굴들로 가득한, 이미 우리 학교가 아닌 듯한 그런 낯설은 느낌을 받을까봐 내심 두려워 졌다. 85년생이면..지금 몇 학년이야..고..고2 !?! 이번에 고 2 올라가는, 그것도?!? 헤에, 사람 취급도 안 해 주겠다..으;; 뭐..어차피 같이 놀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서도..어디 보자..04년 4월에 전역을 하게 되면..1학기 복학은 좀 무리겠고..2학기 복학을 해야 하나. 아니다..바로 그냥 어디 좀 나갔다 와서 복학을 할까나. 어차피 학교로 돌아가도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인간 관계는 만들기 어려울 테니..만약에 바로 나간다고 치면..04년 4월에 제대를 해서..돈 좀 벌고 공부도 좀 하면서..
- 근무 교대야!
라디오 들으며 낄낄대던 조교 녀석, 갑자기 선포한다. 뭐..뭐라. 몇 시인데? 군대 오면서 장만한 평소 차지도 않던 전자 시계. 21:55분을 표시하고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나. 1시간 정도 눈 붙이고 일어나 나온 녀석은 눈이 충혈되다 못해 터져 버릴 거 같다. 저럴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1시간 처음에 깔끔하게 서고 들어가서 좋게 자는게 낫겠다 생각도 들고.
- 수고해라..
교대하고 내무실로 들어와 전투화 끈을 푸는데 갑자기 목이 마르다. 내무실 한 구석에 있는 말통 앞에 쭈그려 앉아 뚜껑 열고 그 빨간 뚜껑에 물 조심조심 따라 몇 잔 마시니 그나마 갈증이 좀 가신다. 벌써 1시간이 지났나. 거 참 .. 은근히 시간이 빨리 가네. 전투화 마저 벗고 침상에 올라가 전투복을 벗고 .. 그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색깔의 내복 차림이 되긴 했는데. 어라랏. 이거 내가 누울 자리가 없네. 자리 여유도 없이 옆으로 누워 어깨어깨 다닥다닥 붙어 자고 있는 모습들 보니 무슨 전쟁 포로들만 같다. 고단한 하루 잠에 떨어져 정신없는 몇몇 녀석 발로 밀고 사이 공간 엉덩이로 부비대 겨우 누울만한 자리 하나 만들고는 행여 다시 좁아질세라 냉큼 침낭 속으로 쏙 파고 들어간다. 선뜩..한 느낌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잔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네. 왜 그러지. 뒤척뒤척. ..... 아. 베개가 없구나. 일어나 앉아 둘러보지만 남는 베개는 없다. 나랑 교대한 녀석도 베개 없이 그냥 자다 나왔나 보네. 뭐 .. 어차피 잠든 녀석들은 빼도 모르겠지. 바로 옆엣 녀석 베개 살짝 빼내려는데 문득 보니 철훈이 녀석이다. 고개 돌려보니 이 쪽은 또 정안이 녀석이네. 내 앞뒤번호 녀석들. 음. 아무리 그래도 이 녀석들 걸 뺏을 수는 없지. 살짝 일어나 잠든 애들 사이 까치발로 조심조심 이동해 멀찌감치에서 자고 있던 한 얼굴이랑 이름 매치 안 되는 녀석 베개를 빼내오는 데 성공했다. 미안하다, 이름 모를 친구야. 담번엔 다른 녀석 베개 빼 갈게. 형이 베개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단다. 그 잠깐 사이 도로 좁아져 있는 자리 다시 낑낑대며 열심히 넓혀 들어가 자리잡고 누우니 그냥 이게 행복이구나 - 싶다.
하하하. 이제 잔다. 좋다. 행복해. 발이 좀 시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제 잠잘 차례라는 게 너무도 행복하다. 그리고 이따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엔 내 방 천장이 보였으면 좋겠다. 이 습한 이상한 창고같은 곳이 아닌 .. 익숙한 냄새의 내 방, 내 그 공간.
이 곳은..
내가 있던 곳이 아니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그렇게 한 시간쯤이나 있었을까.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일제히 청소를 시작한다. 처음에 대충 번호 순서대로 끊어서 내려 준 각자가 맡은 구역을 열심히 청소한다. 밖에서는 나름대로 모두들 성질도 있고 남에게 굽히지 않으면서 살아온 녀석들이지만 옆으로 조교 지나갈 때면 더욱 팔이 떨어져라 걸레질을 해 댄다. 군대라는 곳은..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구나 싶어 씁쓸했지만 정작 나부터 조교 녀석들과 눈 마주치면 움찔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다 못해 백일 휴가 나온 친구 녀석을 그렇게 내가 놀려댔던 작대기 하나 이등병도 지금은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다. 말도 붙이기 힘들 정도로.
그렇게 청소가 끝나자 이젠 점호라는 걸 한단다. 군대 오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서 들은 터라 대충 인원 파악 같은 뭐 그런 거라고는 짐작하겠는데 실제로 세세하게 들은 적이 없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낮에 입었던 군복은 차곡차곡 개어 관물대 위에 접어 올리고, 그 접힌 끝선하며 놓인 접촉면의 선, 모든게 직각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인원 파악이 끝나니 이런 저런 공지 사항을 전달해 준다. 지급받은 흰색도 아니고 누런색도 아닌 애매모호한 갱지 같은 색깔의 내복을 모두 입고 스타일리쉬한 삭발도 아니고 3미리 까까머리를 한 채 차렷 자세로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니 정말 바보들도 이런 바보들이 없다. 밖에 사람들은 이런 광경 보면 뭐라고 할까. 이러는 거 알기는 할까.
근무 순서가 나왔는데 번호 순서대로 해서 내가 초번 근무로 바로 투입되게 되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서게 되는데 내무실 안에 의자 놓고 앉아 있는 한 명, 복도 쪽에 의자 놓고 앉는 한 명. 그렇게 한 내무실 당 두 명씩이 한 시간씩의 근무를 서게 되는 시스템인 듯 하다. 친구 녀석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내가 복도로 앉게 되었다. 이런. 여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겨울인데. 겨울의 복도는 정말 춥다. 물론 한 시간 뒤에는 나도 근무를 교대하고 들어가서 자게 되겠지만, 그리고 돌아가면서 중간에 일어나 근무 서고 자는 식으로 끊기는 잠을 자게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 바로 잠에 드는 녀석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오후 10시. 어디에선가 멀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곧 소등이 이루어지고, 불침번들 자기 위치에 모두 위치한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사람은 불침번이 같이 화장실까지 따라가 들여 보내주고 기다렸다가 같이 돌아와 자는 거 확인까지 해야 한단다. 훈련소에서의 자살을 막기 위한 조처라는데..어차피 이 곳까지 온 마당에 그럴 녀석이 있을래나. 다행히 나야 화장실 다녀올 것 다 다녀오고, 그렇게 잠이 든 시간대의 근무라 그런 귀찮은 일은 없겠지만서도. 10분 정도 지났을까. 잠이 정말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조용해진 건물. 조교 녀석이 자기 들으려고 틀어 놓은 고물 라디오 소리만이 작게 희미하게 귀를 간지럽힌다. 애써 귀 쫑긋 세워 들어보려고 하지만 워낙 작아 말 소리구나, 음악 소리구나, 웃음 소리구나 정도의 구별밖에 불가능하다. 슬쩍 눈치껏 몰래 보니 뭔가 막 쓰면서 공부하고 있다. 얼핏 보이는 책 표지엔 토익 어쩌구 막 쓰여 있다. 계급은 상병.
내가 상병을 달려면..2003년 2월..앞으로 1년...가만..훈련소가 6주이니까..한 4월말이나 되면 자대에 가겠네..경기도로 갈래나? 강원도? 휴..그리고 백일 휴가는..한 6월쯤 되면 나갈 수 있겠다. 으..그 때 월드컵인데..재미있든없든 그래도 이제 또 언제 한국에서 할 지 모르는데..그 때 시합 시간이랑 꼭 맞아서 나가서 구경해야지. 에 또...오늘이 2월 14일..이등병이 여섯 달이니까..8월에 일병 달겠다. 그리고..내년 2월에는 상병 달고..여덟 달 뒤에는 병장...2003년 10월..그리고..2년 2개월이니까..2004년 4월 13일에는 제대를 하겠구나. 2004년. 2004년.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너무 까마득한 시간이 남았다. 내 군생활의 끝은 보이지도 않고 옆에서 라디오 노래 따라 흥얼 거리며 책 보는 둥 마는 둥 앉아 있는 상병 조교 녀석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힐끗 옆을 보니 내무실에 앉아 있는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 있다. 그래도 조교의 시야 범위에서 사각 지대이니 걸릴 위험도 없다. 난 이게 뭐냐고..바로 옆에 앉아서..가위바위보 연습이나 해야겠다 내일부터는. 그래도 군대 들어와서 처음 맡는 내 임무라서 그런지 알 수 없는 책임감도 마구 샘솟는다. 복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계속 눈 부릅 뜨고 두리번 거리게 되는. 2002년..2년 2개월 뒤는 바라지도 않으니 2003년이라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2003년이 되면 내년에 전역한다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 내년도 아니고 내후년 전역이라니..이건 너무 끝이 안 보이잖아..새삼 1학년 때 짜증난다고 피하고 도망 다녔던 예비역 복학생 형들이 우러러 보이는 순간.
동생 녀석..부모님 잘 챙겨 드리고 있는 지 모르겠군. 녀석도 이제 대학생이니..02학번인데. 뭐 이런 저런 얘기도 해 주고 싶다만은..워낙 믿음직한 녀석이니 잘 하리라 걱정도 사실 별로 안 된다. 에..가만 있자..내가 제대를 2004년에 하니까..학교로 돌아가면 04학번들이 1학년이겠구나. 04학번이면..8..85년생?! 빨리 들어간 애는 86년생도 있겠군...;; 몇 살 차이야...네 살 다섯 살 차이..;; 말이라도 걸 수 있을래나 모르겠군..;; 내가 복학생 형들 피해서 도망다니고 웃고 그랬던 것과 똑같이 날 보고 그렇게 대하지 않을까? 웬지 군생활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도 모르는 얼굴들로 가득한, 이미 우리 학교가 아닌 듯한 그런 낯설은 느낌을 받을까봐 내심 두려워 졌다. 85년생이면..지금 몇 학년이야..고..고2 !?! 이번에 고 2 올라가는, 그것도?!? 헤에, 사람 취급도 안 해 주겠다..으;; 뭐..어차피 같이 놀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서도..어디 보자..04년 4월에 전역을 하게 되면..1학기 복학은 좀 무리겠고..2학기 복학을 해야 하나. 아니다..바로 그냥 어디 좀 나갔다 와서 복학을 할까나. 어차피 학교로 돌아가도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인간 관계는 만들기 어려울 테니..만약에 바로 나간다고 치면..04년 4월에 제대를 해서..돈 좀 벌고 공부도 좀 하면서..
- 근무 교대야!
라디오 들으며 낄낄대던 조교 녀석, 갑자기 선포한다. 뭐..뭐라. 몇 시인데? 군대 오면서 장만한 평소 차지도 않던 전자 시계. 21:55분을 표시하고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나. 1시간 정도 눈 붙이고 일어나 나온 녀석은 눈이 충혈되다 못해 터져 버릴 거 같다. 저럴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1시간 처음에 깔끔하게 서고 들어가서 좋게 자는게 낫겠다 생각도 들고.
- 수고해라..
교대하고 내무실로 들어와 전투화 끈을 푸는데 갑자기 목이 마르다. 내무실 한 구석에 있는 말통 앞에 쭈그려 앉아 뚜껑 열고 그 빨간 뚜껑에 물 조심조심 따라 몇 잔 마시니 그나마 갈증이 좀 가신다. 벌써 1시간이 지났나. 거 참 .. 은근히 시간이 빨리 가네. 전투화 마저 벗고 침상에 올라가 전투복을 벗고 .. 그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색깔의 내복 차림이 되긴 했는데. 어라랏. 이거 내가 누울 자리가 없네. 자리 여유도 없이 옆으로 누워 어깨어깨 다닥다닥 붙어 자고 있는 모습들 보니 무슨 전쟁 포로들만 같다. 고단한 하루 잠에 떨어져 정신없는 몇몇 녀석 발로 밀고 사이 공간 엉덩이로 부비대 겨우 누울만한 자리 하나 만들고는 행여 다시 좁아질세라 냉큼 침낭 속으로 쏙 파고 들어간다. 선뜩..한 느낌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잔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네. 왜 그러지. 뒤척뒤척. ..... 아. 베개가 없구나. 일어나 앉아 둘러보지만 남는 베개는 없다. 나랑 교대한 녀석도 베개 없이 그냥 자다 나왔나 보네. 뭐 .. 어차피 잠든 녀석들은 빼도 모르겠지. 바로 옆엣 녀석 베개 살짝 빼내려는데 문득 보니 철훈이 녀석이다. 고개 돌려보니 이 쪽은 또 정안이 녀석이네. 내 앞뒤번호 녀석들. 음. 아무리 그래도 이 녀석들 걸 뺏을 수는 없지. 살짝 일어나 잠든 애들 사이 까치발로 조심조심 이동해 멀찌감치에서 자고 있던 한 얼굴이랑 이름 매치 안 되는 녀석 베개를 빼내오는 데 성공했다. 미안하다, 이름 모를 친구야. 담번엔 다른 녀석 베개 빼 갈게. 형이 베개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단다. 그 잠깐 사이 도로 좁아져 있는 자리 다시 낑낑대며 열심히 넓혀 들어가 자리잡고 누우니 그냥 이게 행복이구나 - 싶다.
하하하. 이제 잔다. 좋다. 행복해. 발이 좀 시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제 잠잘 차례라는 게 너무도 행복하다. 그리고 이따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엔 내 방 천장이 보였으면 좋겠다. 이 습한 이상한 창고같은 곳이 아닌 .. 익숙한 냄새의 내 방, 내 그 공간.
이 곳은..
내가 있던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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