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공부 좀 하다 왔다. 어디어디에서 몇 년 생활하다 귀국했다. 영어 조금 한다, 일본어 조금 한다. 내 일본 친구 田中상이 말하는데 .. 캐나다 친구 Brian이 말하는데 .. 블라블라. 외국에서 살다 왔다ㅡ라고 하면 일단 대단하게 보고 외국 친구 있다고 하면 엄청난 인맥을 가지기라도 한 듯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괜히 외국물 먹었다고 하면 뭔가 더 있어 보이고, 그 나라 말은 능통하게 술술 쏟아낼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이십수년을 살아온 한국을 잠시 떠나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외국에 가서 살다 온다는 것 자체가 쉽게 생각되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지만 굳이 다녀오지 않더라도 딱히 자신의 생활들에 큰 걸림돌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외국에서 공부한 적 있다라고 하면 실제 실력과는 상관 없이 단순한 그 체류 경험 자체로 이미 남들과는 다른 커리어를 인정해주고 프리미엄을 내어 주던 시절. 하지만 다녀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큰 불편을 겪는다거나 하지는 않던, 어찌 보면 속 편하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사람 냄새 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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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부담이 있던 없던 빚을 내서 가던 아니던 이미 이른바 "외국물"은 더 이상 플러스적인 요인이 아닌 기본 옵션처럼 되어 버렸다. 현지에서 태어나 2개 국어, 3개 국어를 모국어처럼 능통하게 해 내는 어린 친구들이 넘쳐나는 판에. 별다른 목적도 없이 그저 남들 다 가니 그 분위기에 쓸려 같이 나가서 몇 년짜리 비싼 관광만을 하고 돌아오는 몇몇 사람들. 비싼 돈 들여 기껏 가서는 날씨 얘기에 살아가는 얘기에 밥 먹고 자고 하며 떠드는 얘기들 조금 알아 듣게 되었다고 잔뜩 신나서 그 정도에 만족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뭔가 자신의 뚜렷한 길을 찾지 못하고, 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무슨무슨 인기 있는 시험들 점수나 조금 올려서 이력서 한 귀퉁이나 더 채워 보려고 하는 사람들. 남들 다 가니 나도 가서 기본은 맞춰 따라가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이나 하는 생각 없는 사람들. 그들이 타국 땅에 가서 버리고 온 돈과 시간에는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돈이 넘쳐나 썩어가는 집이라면 몇천만원정도"밖에" 안 되는 돈에 무슨 의미까지 부여하느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면 버려진 시간은 어떻게 되돌릴 건가. 80 인생에 "고작" 1,2년 정도의 짧은 시간을 갖고 무슨 그리 오버냐라고 하겠지만 이미 동서고금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진리가 있지 않은가. 20대의 1년은 50대의 10년과 같다고 했다. 20대에는 돌에 걸려 넘어져도 먼지만 툭툭 털고 금새 일어나 달릴 수 있지만 50대에 넘어져 버리면 그대로 영영 일어날 수가 없다던 그 말. 20대 때에는 넘어져도 잡고 일어날 손들이 주위에 가득하지만 한 번 넘어져 버린 50대에게는 세상은 냉정하다던 그 말.
가장 흔히들 저지르는 실수가 유학을 어떤 도피처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교는 졸업했는데 마땅히 불러주는 곳도 갈 곳도 없고 .. 혹은 어찌어찌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데 정작 나와는 맞지도 않고 갈팡질팡하다 결국 그래 한 번 나갔다 오자 생각하고 준비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훌쩍 떠나는 그런 도피성 유학. 다녀 오면 뭔가 내가 변할 거라는 그저 그런 막연한 기대감. 내가 남들처럼 밖으로 한 번 나갔다 오지 않아서 이렇게 지금 불이익을 받고 있을 거라는 자기합리화. 결국 다 변명이고 핑계일 뿐이다. 머리 속 생각이 애초에 잘못 박혀 있는데 겉을 아무리 외국물 페인트로 떡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뭔가 다녀오는 것만으로 내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던가. 그래도 안 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정도의 생각이라면 결국 평생 그 자리에서 같은 원을 그리며 맴돌 수 밖에 없다. 5년을 있어도 10년을 있어도 매일 쓰는 말만 계속 쓴다는 LA교민들의 이야기가 그저 남 얘기일 수만은 없는 것. 적어도 이십수년을 살아 낸 사람이라면 자신의 처지에 비겁한 핑계 따위는 대지 않아야 그런 걸 보고 비로소 우리는 "나이값을 한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터.
유학이든 어학 연수든 자신의 뚜렷한 길이 있어야 최소한의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건 이미 만고불변의 진리다. 일분이 멀다 하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 수많은 정보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갖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 도움되는 정보 참고는 하되 무작정 끄는대로 끌려가지는 않는 것. 그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타국에서의 경험을 꾸려 나간다면 성공적인 유학 생활로 이끌어 낼 수 있을테다. 이미 어학만으로 무엇인가를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시대는 갔다. 언어는 그저 기본옵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위에 플러스적으로 붙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말 잘 하는 사람은 이미 도처에 널리고 널렸다. 오히려 자신만의 자신 있는 전문 분야가 하나 있고 그 위에 언어가 플러스로 붙는 그림이다. 무엇이 플러스인지 착각하면 곤란하다. 이미 2개 국어를 지나 3개 국어가 필수라고 떠드는 세상인데 고작 그 나라 말 조금 하는 걸로 어떻게 비벼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 아닌가.
열 번 백 번도 넘게 하루에 계속 스스로 세뇌를 시키고 있는 말. 자신의 길을 찾아라.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1년이 걸리던 5년이 걸리던, 2천만원이 들어가던 2억이 들어가던 그 시간과 돈을 뛰어 넘는 나만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비로소 성공했다라고 할 수 있는 유학 생활이 아닐까 싶다. 남들과 차별될 수 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을 때에야만 그래도 뭔가 얻은 시간이었다라고 비로소 얘기할 수 있을테다.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박혀 있다면 하드 웨어야 투자에 노력을 쏟아 부어 갈고 닦아 업그레이드 시키면 되는 것. 괜한 시대 탓에 환경 탓에 방바닥 긁으며 신세 타령하지 말고 냉정하게 자신의 성능을 먼저 점검해 보자. 과연 나는 타국땅에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인지 먼저 자신의 서 있는 곳도 한 번쯤 되돌아 볼 것. 언제 어디에서 누가 물어도 바로 그에 대한 대답이 튀어나올 수 있는 그런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아울러 나는 가서 과연 무엇을 전리품으로 가지고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올 것인지도.